2009년 4월 11일 토요일

타마미:아기의 저주(赤んぽ少女:Tamami:The Baby’s Curse, 2008년, 야마구치 유다이)

우메즈 카즈오 원작의 일본 공포물.

고아원에서 살고 있던 요코에게
난조라는 부자가 15년 전에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던 딸이란 소식이 전해진다.
요코는 난조의 저택에 도착해서 가족을 찾게된 기쁨에 행복해 하지만,
엄마는 미쳐서 곰인형을 안고 돌아다니고 있고,
집안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애 울음소리에 불안하기만 한데....

야마구치 유다이 감독 그렇게 안봤는데 실망이다.
영화가 꼬라지가 이게 뭡니까?
기형아 하나에 출생의 비밀까지--;;;;
더 이상 할말도 없다.

2009년 4월 8일 수요일

야경혼(夜驚魂: He Lives By Night, 1982년, 양보지)

변태 살인마가 등장하는 홍콩의 코믹 공포물.

홍콩에 여장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하얀 그물 스타킹과
가터 벨트를 찬 여자만 골라서 죽이는 변태가 나타난다.
사건은 계속 발생하지만 무능한 경찰은 용의자도 못잡고 헤메기만 하고,
라디오 방송국의 DJ 아가씨가 단서를 발견하고 경찰과 협력해서
변태 살인마를 유인해 들이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난 중화권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부 괜찮은 영화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중화권 공포는 가볍고 분주하기만 하지
영화의 중심이 어느쪽에 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코믹한것도 좋지만 자신이 공포영화란 사실을 잊는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 영화도 일반적인 중화권 공포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엉뚱하게 형사반장과 라디오 DJ아가씨의 상황극과 몸개그에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니
연쇄 살인마의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작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살인마의 고뇌를 부각시키려고 삽입한것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유혹을 느끼는 장면같은건
 오히려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도 않고 완전히 따로 노는 사족이 되버릴 지경이다.
솔직히 괜잖은 공포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든 영화다.

추신) 이름이 민망스러운 양보지 감독은 요즘 미국에서 활동중인 모양이다.
웨슬리 스나입스나 스티븐 시갈을 기용해서 영화를 만들었던데,
그다지 성공한것 같지는 않다.

2009년 4월 7일 화요일

스플린터(Splinter, 2008년, 토비 윌킨스)


기생 식물의 습격.

동거 1주년 기념으로 숲속에서 달빛을 맞으며 거시기를 하려던 커풀이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돌아오던 도중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다.
납치범의 요구대로 운전을 하던중 차가 고장나고
주유소에 내린 사이 그것이 습격을 해오는데.....

제대로된 출연자가 4명밖에 없고
카메라를 심하게 흔들어서 기생충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아마도 완성도 있는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못해서 그러는것 같다.)
저예산 영화지만 언뜻보면 피스트(Feast)를 연상시키는
꽤 재치있고 속도감 있는 크리처물이다.

시체를 이용해 이동하는 곰팡이(?)라는 아이디어와
등장인물간의 균형 관계, 긴장감 유지, 전부 그럴듯하다.
특히 텐트도 못치고, 운전도 못하고, 바퀴도 바꿀줄 모르면서
말만 많은 남자가 마지막 전사로 변신하는 모습은
이제 보편화된 여전사를 뛰어넘어 성 역할 자체를 뒤집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다.
없는 돈에 이 정도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영화다.

2009년 4월 3일 금요일

빌마르크(Villmark:Dark Woods, 2003년, Pål Øie)

이왕 이렇게 된거 북유럽 영화 한편 더 달려보자.
이번에는 노르웨이에서 만든 슬래셔 호러물이다.

야생 리얼리티 TV쇼를 찍기 위해서 4명의 젊은이와 제작자 한명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먹을 것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젊은이들이
연못가에서 버려진 텐트와 익사한 여자 시체를 발견하지만
제작자는 하산을 거부하고 계속 숲에 남아서
 계획된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 한다고 고집하는데.....


형태상으로 슬래셔 호러가 분명하기는 한데
2007년 이후의 강력한 노르웨이 슬래셔와 비교해보면
2003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온건하고 파워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슬래셔의 기본 공식에 따르면 술마시고 담배피우고 섹스하는 애들이
먼저 죽어야 하는데 그거 다하고도 살아남는 애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는 사람이 너무 적다.
특히 슬래셔에서 예쁜 여자가 옷을 벗지 않는건 용서가 되도
잔인하게 죽어나가지 않는건 용서가 안된다.
영화의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떠나서 이렇게 온건한 슬래셔는
결과적으로 불평이 따라 붙을 수밖에 없다.


2009년 4월 2일 목요일

사우나(Sauna, 2008년, Antti-Jussi Annila)

16세기말 핀란드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 호러영화.

25년간의 참혹한 전쟁이 끝난뒤,
러시아와 스웨덴 대표가 모여서 핀란드지역을 직접 답사하면서
함께 국경선을 결정하기 위한 협약을 진행해 나간다.
이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늪지역을 방문하게 되고
예상치 못했던 주민들과 늪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사우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전쟁으로 단련된 잔인한 형과
왕국의 지도를 완성할 야망을 가진 젊은 지리학자 동생간의 갈등을 기본으로
타르코프스키를 연상시키는 도덕성과 죄책감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화면은 어둡고 정적이며 왠지 동양 귀신을 생각나게 하는
초자연적 귀신이 등장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다.

그런데 이것 참... 또 북유럽의 영화다.

그것도 16C 핀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북유럽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서
당시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인터넷에서 얻은 짜투리 지식으로는 영화속에 등장하는
 지역적, 종교적, 국가적 갈등이 별로 와닫지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한가지는 확실히 집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영화가 시작할때 "핀란드와 러시아의 전쟁...."이라고 자막에 나온다.
원래 영자막이 그래서 나도 그렇게 번역했지만 한마디로 무식한 소리다.
16세기에는 핀란드란 독립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핀란드 지역은 러시아와 접경한 스웨덴의 영토였다.
그래서 영화속의 주인공 형제가 핀란드 지역에서 태어나,
핀란드말을 쓰면서 자신은 스웨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 민족국가 개념이 대두되기 전이란 그런 생각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